한 개인(특정인)의 가계를 본인으로부터 위로 고조까지 소급했을 때 8명의 고조가 기재되는 세계도.
개인의 혈연관계를 위로 추심할 경우, 부(父)대에서는 부모 2명이 되고 조(祖)대에서는 4명(조, 조모, 외조, 외조모)이 되며, 증조대에서는 8명, 그리고 고조대에서는 16명이 된다.
고조대(高祖代)의 16명 중 8명은 고조이고 8명은 고조모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위로 조상을 소급해 올라갈 경우 고조대에 해당하는 조상이 사실은 16명이지만 남성인 8명의 고조만을 지칭하여 8고조도라 하는 것이다.
팔고조도는 동고조(同高祖) 8촌을 친족단위로 파악하는 친족제도의 산물이었다.
조선시대 왕비를 간택하는데 필수적인 수단이었고 양반가문에선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집안 내력이였다.
동양의 유교식 친족제도는 동고조 8촌을 친족집단의 최소이며 최대의 단위로 파악하였다. 유교의 상복제도(喪服制度)나 친족용어도 동고조 8촌 이내의 친족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고조 8촌 이내의 친족집단은 상호간에 가승(家乘 : 한 집단의 역사적 사실을 적은 책)이나 팔고조도 등을 만들어 서로를 인식하고자 노력하였다.
양반과 같은 상위신분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할 증거자료로서 족보나 가승 또는 팔고조도 등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조선왕실도 왕이나 왕비의 팔고조도를 왕실족보인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에 등재하여 훌륭한 신분의 출신임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팔고조도는 오늘날도 작성하기 어렵다. 하물며 남의 집안 족보를 일일이 다 찾아다닐 수도 없고 족보 자체가 대다수 20세기 들어서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팔고조도는 만가보(萬家譜)나 안동권씨 성화보(成化譜) 등을 참조로 하여 작성한다.
양천허씨 보감(寶鑑)에 의하면 ‘공(公)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이고 배위는 대사성(大司成, 고려 시대 성균관의 정3품 벼슬) 김승인(金承印)의 따님인 부령 김씨(扶寧金氏, 또는 부안김씨)인데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들은 찬성사 허진이고 사위는 양성인 문하시중 이춘부(李春富)와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여흥인 민중립(閔中立) 그리고 청풍인 청로상장군 김중원(金仲源)이다.
그러나 고려사는 공(公)의 벼슬이 수산물의 조달, 하천의 교통 등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사재시(司宰寺)의 최고 책임자인 판사(判司),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 정3품)로 적고 있다. 찬성사(贊成事)는 고려 시대 후기 국정을 총괄하던 첨의부(僉議府시대에 따라 도첨의부, 문하부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다.)의 정2품 관직으로 타 부서의 장관격인 판사(判事)를 겸직하기도 했다.
1시중공 諱 春富의 처남, 찬성사 허진(贊成事 許璡)
광정대부 첨의부 찬성사(匡靖大夫僉議府贊成事) 허선(許僐)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는 대사성 부녕 김승인(大司成 富寧 金承印)의 따님이다. 정절공과 형제분들의 외삼촌이다.
첫째 아드님은 군수공 허항(許恒)이고 둘째 아드님은 호군공 허환(許桓)이며 세분의 따님을 두시었다.
고려 충숙왕 6년 정축(1337년)에 출생하여 공민왕 9년 경자(1360년) 정몽주 방(榜)에 국자진사전판관(國子進士前判官)으로 진사급제(進士級第)에 올라 벼슬이 광정대부 찬성사(匡靖大夫僉議府贊成事)에 이르렀다.
자손(子孫)의 지(誌)에서 옥질(玉質)과 난자(蘭姿)로서 일찌기 가업을 이어 능히 문장을 일으키고 선인의 아름다움을 계승하여 넉넉함을 후손에게 물리었으며 경계하기를 "시조로부터 벼슬을 이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너희들은 더욱 부지런히 업을 닦아 가성(家姓)을 떨어뜨리지 말라" 하였다. 매년 양11월 첫째주 일요일에 추향 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1시중공 諱 春富의 동서, 전교령(典校令) 민중립(閔中立)
본관은 여흥(驪興). 여성군 (驪城君) 민근 (閔瑾)의 아들로 부인은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찬성을 지낸 허선(許僐)의 따님이다 2남 2녀를 두었는데 민대생과 민소생이다.
장남 민대생(閔大生)은 3남 2녀로 효흔과 장령(掌令) 민효환(閔孝懽)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민효열(閔孝悅)의 아버지로 소윤(小尹)을 지냄. 사위는 압구정 한명회와 윤혜 차남 삼척부사 민소생은 아들 효근과 사위 송현수가 있는데 송현수의 딸이 단종비 정순왕후 장녀는 판사재감사 李械拱에게 차녀는 안동인 권중귀 아들 권숙(權肅)에게 출가했다.
1시중공 諱 春富의 동서, 청로상장군 김중원(金仲源)
본관은 청송. 문하시중 김창조(金昌祚)의 아들로 부인은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찬성을 지낸 허선(許僐)의 따님. 아들은 김정(金瀞)이고 사위는 의성인 김로(金輅)와 공조전서 기면(奇勉)이다.